- 연어로서 예술가 – 근원으로 가는 세 가지 관문에 관하여
- 나락도 락이다! - 캔슬 컬처와 캔슬 할 수 없는 존재들
- 투사를 위한 문학-팔레스타인 시론: 사랑으로 저항하기
- 최근 팔레스타인 저항과 중동의 역학 관계
- 연속혁명은 무엇이고 어떻게 팔레스타인 해방 문제에 적용되는가
- 셰헤라자데의 시네마: 천세 번째 이야기
- 웹 도큐멘테이션 은하계의 탄생
- 다시, 누가 지구를 대변해줄까?: 천문학의 인류사적 의의에 관하여
- 다중 감각 우주: 쌍둥이 블랙홀로부터
- 〈유니콘의 춤〉리뷰: 유니콘의 뿔처럼 가라
- 로망 뷔페: 파편 사이 유랑아[3]
- 로망 뷔페: 파편 사이 유랑아[2]
- 로망 뷔페: 파편 사이 유랑아[1]
- 은행어
- Graffiti In Pusan 부산 그래피티 20년, 로컬의 이야기
- 첫 문장에 주목하여 <자본>을 읽자
- ◐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...
- ◐ 추모의 이상향과 우상향의 그래프
- ◐ 세 페이지 소설 시리즈(1): '소인연구소' 김XX소장 인터뷰-경산 코발트 광산 방문에 갈음하여
- ◐ 미완의 질문: 보도연맹 이후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?
- ◐ 대구미래대, 그리고 사라진 사과
- ◐ 죽음은 해석의 문제
- 왜 사회주의인가?
- 균질성과 시차
- 사변死變적 실재론, 벤 우다드의 암흑 생기론 해제
- 점액질의 존재론적 전회 The ontological revolution of slime
- ※퐁의 새 프로젝트 ⟨스피드런⟩ 창설을 알립니다.※
- 디자인 비엔날레의 무게
- 돈 내고 모이는 시대 : 스터디 모임의 상품화 현상에 대하여
- 그 마왕은 누가 쓰러뜨렸을까?: 비디오 게임에서의 플레이어와 루두스 장치
- 가장 동시대적 지역성으로서의 초지역: 어느 지리학자의 그림
- 친애하는 우리에게
- 규범 사이를 미끄러지는 변명들: 고요손 개인전 《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》에 부쳐
- 아카이브라는 에코챔버를 부수고 싶다는 미스테리한 욕망: 최근 관람한 두 개의 전시를 경유하면서
- 성병의 재구성
- 은유로서의 무빙 이미지, 그리고 영화의 종언: 콩종크튀르(conjoncture)로서의 포스트모던을 넘어[1]
- [공모전] 문제. 지역성을 규명하시오
- 노동집약적 환대
- 퐁: 로컬리티 워크샵 모집 공고
- 공공미술의 소요(騷擾)의 틈 속에 소요(逍遙)하기 - <2021 프로젝트 영도> 이후
- 허공에 미치는 영향력
- 춤과 혁명에 관한 짧은 노트
- 인공지능 혹은 ‘물질적 정신’ — 새로운 철학적 과제 (1)
- ◙ ⟪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⟫ 서문・스테이트먼트
- ◙ 지궁도에 관한 노트 : 예술이 한 발 앞설 수 있다면
- ◙ 혁명을 위한 절대적 지도 제작 The absolute cartographical: 《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》에 관한 노트
- ◙ 구멍 난 스크린 위로 전초기지를 세우며
- 선전 이후의 선전물들: 이대 시위에서 MC무현, 그리고 성재기까지
- 자연의 가상화, 가상의 자연화
- 보이스 볼텍스 Voice Vortex : 영화 <그녀>와 <아노말리사> 속 목소리의 풍경
- 폭★8의 시학, 심영물
- 다크 큐레이션: 작품 개념의 위반
- 지금 여전히 귀귀의 만화를 본다는 것은
- 모든 초고는 방언이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vernacular
- 예술분야에서의 필드워크
- <오징어 게임>: 게임의 수용소에 갇힌 시민들과 밈적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하여
- ‘체계의 완성자’ 헤겔?
- <파르마코-AI> 혹은 언어 모델이라는 파르마콘
- 비평의 '위드'는 가능한가: 비평가 22인의 릴레이 인터뷰①
- 비평의 '위드'는 가능한가: 비평가 22인의 릴레이 인터뷰②
- 비평의 '위드'는 가능한가: 비평가 22인의 릴레이 인터뷰③
- 포스트코로나 시대: 미술계와 관료주의적 작동방식(Modus Operandi)
-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마음들
- 동사로서의 페인팅
- 무빙/리빙 이미지로서의 VR에 관한 연속적 질문
- 자본주의 스탈리니즘
- 「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리얼리즘 운동, 혹은 아시아의 가능성: 수조요노(S. Soedjojono)의 작업 세계에 대한 간략한 일별」
- QR
- 목계지덕木鷄之德의 조증
- 미술비평은 왜 실종됐을까?
- I'm So Sorry But I Love You
- 집단 자살을 소망해도 될까요?
- 예술을 먹고 기도하라, 때늦은 보수적-낭만적 편지로서 비평
- 여성이라는 난제 : 얄팍한 성기를 넘어선 범주를 상상하기
- 집 나간 주체와 망상 기계들 : 서사는 어떻게 공예품이 되었나
- 버그와 상동증
- 19) 망가F타로의 죄와 벌 독해
- 여가로서의 게임, 노동으로서의 게임, 상품으로서의 게임: 게임 읽기의 혼란과 비판적 개입
- ¿ 새로운 카바레 볼테르 혹은 새로운 컨벤션 홀 ?
- 그러므로 비평으로 돌아가자!